오늘은 차풀테펙 숲에 위치한 멕시코 시티 역사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멕시코의 차풀테펙 성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있는 성이라고 합니다. 국립 역사박물관은 외국인의 경우 90페소의 입장권을 내야해요, 하지만 학생 신분증이 있을 경우 무료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멕시코의 날씨는 사계절이 봄이고 사계절 꽃이 피어 있지만 나름 그 안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온도차가 있어서 살짝 춥고 덥고 시기에 따라 그렇게 바뀝니다. 4월이 가장 더운 달이라서, 활동을 하시려면 아침 일찍 박물관, 미술관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서 구경을 하시고 낮 12시쯤 되면 벌써 뜨거워져서 너무 걸어 다니기 힘든 날씨가 되더라고요. 아래 그림은 멀리서 바라본 차풀테펙 성의 이미지입니다.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혹시 이미 눈치채셨을지 모르지만, 차풀테펙 성 주위로 울창한 나무가 빼곡한 Bosque Chapultequec 차풀테펙 숲이(사이즈 2백만평) 있어요. 이런 걸 바로 숲이라고 하니까, 멕시코 사람들이 보기에 서울숲은 공원같이 귀여울 수밖에요. 차풀테펙 숲의 사진은 곧 따로 포스팅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뉴 스페인 부왕령 시대에 최고 식민 행정관인 총독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습니다. 1841년 화약 창고에서 사관학교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멕시코 제2제국 (1864~67) 동안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 와 그의 배우자 카를로타 황후 의 관저로 개조 및 증축되어 관저가 되었습니다. 1882년 마누엘 곤살레스 대통령은 이곳을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로 선언했습니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후임 대통령은 Lázaro Cárdenas 대통령이 Los Pinos에 머물렀던 1934년까지 그곳에 살았습니다. 대신 1939년에 성을 박물관으로 바꾸었습니다."<출처: 위키피디아 중에서 일부>
1940년 국립 역사 박물관은 1500년대 스페인 정복부터 1917년 헌법 공포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별도의 기관이 되었습니다. 박물관은 1941년 멕시코 시티의 차풀테펙 성으로 이전하여 194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 이 박물관은 150,000점 이상의 의류, 문서, 깃발, 보석, 무기 및 기타 멕시코의 사회 및 문화사와 관련된 물건을 보관했습니다. 소장품 중에는 정복자 Hernán Cortés 가 사용했던 전투 깃발과 Charles II 왕의 스페인 왕실 조각가 Luisa Roldán 이 제작한 18세기 조각품인 "Virgin with Child"가 있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1521년 아즈텍 (멕시카)제국 의 문화 및 정치 중심지인 폐허가 된 섬 수도인 테노치티틀란 위에 멕시코시티를 세웠습니다. 서반구에서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 정착지 중 하나이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도시 지역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강둑을 따라 위치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멕시코 계곡 또는 메사 센트럴이라고 하는 내륙 유역에 있습니다. 이 계곡은 멕시코 남부 고원의 연장이며 한때 이 지역에 여러 개의 큰 호수가 있었기 때문 Anáhuac(Nahuatl: "물가에 가까운")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멕시코라는 이름은, 식민지 이전 주민들의 언어 Nahuatl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출처: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중 일부>
차풀테펙 숲을 가로질러서 올라가면 이렇게 성이 나오는데요. 일단 안에 들어가면 양 쪽 갈래로 두 계단이 나오는데요. 그 계단 위로 보게되면 한 남자가 국기를 들고 떨어지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멕시코 에서 어린이 영웅의 날을 기념하는 9월 13일이 도래할 때마다 이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논란이 다시 화제가 된다.
역사의 공식 버전에 따르면 1847년 9월 13일 미국이 멕시코에 개입하는 동안 6명의 젊은 생도 Agustín Melgar, Fernando Montes de Oca, Francisco Márquez, Juan de la Barrera, Juan Escutia 및 Vicente Suárez가 차풀테펙 성을 방어 했습니다 . 미군이 그것을 가져가려고 했을 때. 당시 이 캠퍼스는 군사대학이었습니다.
멕시코 자치 대학교 의 기사에 따르면 차풀테펙 성에는 니콜라스 브라보 장군 휘하의 약 250명이 있었고 , 미구엘 미라몬을 포함한 군사 대학의 생도 50명이 있었습니다. 브라보는 싸우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6명의 젊은 생도들은 미군의 진격을 보고 브라보 장군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이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이것은 역사가 신화로 가득 찬 때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Juan Escutia 의 신화입니다 . 이 어린이 영웅은 미군이 더럽히는 것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기에 싸인 성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
그러나이 정보는 완전히 검증 된 적이 없으며 역사와 신화 사이의 미세한 경계에 걸쳐 있습니다.
후안 에스쿠티아는 누구였습니까?
Juan Escutia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 그는 1827년 2월 22일 나야리트에서 태어났으므로 184년 9월 13일 차풀테펙 성에서 사망할 당시 20세였을 것이다. <출처: admagazine.com>
1층 계단 옆으로 걸어가면 전시관이 있어서 시작을 하시면 됩니다. 1500년대 스페인 정복 시대부터 헌법 공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의 기록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굉장히 유명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그림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를 못해서 그림에 대해서 찾아보니 한국으로 따지면 문화관공부 같은 곳에서 그림에 대해서 설명한 글을 가져와봤습니다.
이 그림은 메소아메리카에서 번성했던 나와틀족과 스페인이라는 두 가지 다른 문화의 충돌의 산물로서 멕시코 문화의 탄생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싸움에서 동시에 죽은 독수리 전사와 스페인 정복자의 모습에서 명확하게 상징됩니다. 멕시코 조국은 이 두 세계관의 결과로 건설될 것이다. 오른쪽 하단에는 전투의 열기 한가운데 나타나는 작은 독수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복 전쟁의 도가니에서 잉태된 멕시코의 탄생을 나타냅니다. 벽화의 오른쪽과 왼쪽 모두에서 양측의 휘장을 볼 수 있습니다. 토착 깃털과 배너, 스페인 국기가 전투의 불에 타 버립니다.
González Camarena는 우리 박물관을 위해 다른 작품을 만들었으며 국내외의 화가이자 벽화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960년 건축가 Carlos Obregón Santacilia와 공동으로 그는 Hidalgo의 Dolores에 있는 독립 기념비 조각품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에 그는 국립 역사박물관에서 벽화 The Fusion of Two Cultures를 그렸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쿠바와 칠레를 여행했습니다. 하바나에서 그는 멕시코 현대 회화 전시회에 전시하고 Concepción에서 미술 학교에서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 예술가 덕분에 San Juan de Ulúa 성은 현장에 창고와 석유 도크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살릴 수 있었습니다. 1970년에 그는 National Arts Award를 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멕시코 시티의 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출처: https://mexicana.cultura.gob.mx >
멕시코에 해군 사관학교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 학생들이 이용하던 배의 축소 모형이라고 합니다. 해당 모형은 1896년에 Mirón 가족이 선물로 준 19세기 초의 호위함을 기반으로 하며 이름이 Chapultepec이라고 합니다.
한 빌딩을 다 보고 나면 나와서 다른 빌딩으로 가면 아래와 같이 멕시코 제국주의 시대 2번째 황제였던 막시밀리언 황제의 초상화와 그가 갈라파티에 주로 이용했던 화려한 마차가 보입니다. 마차를 보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입었던 의상 등이 전시가 되어 있고요. 그와 그의 아내가 실제 거주했던 곳인데 모든 게 정말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후손들에게 또 전 세계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있네요.
두 번째 멕시코 제국
멕시코 보수주의자들이 막시밀리안 폰 합스부르크를 초대하여 멕시코 제2제국을 건설했을 때, 현재 Castillo de Miravalle로 알려진 이 성은 1864년에 황제와 그의 배우자의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왕실 부부, 그중 Julius Hofmann, Carl Gangolf Kayser , Carlos Schaffer, Eleuterio Méndez 및 Ramón Cruz Arango, 건축가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르는 여러 프로젝트를 설계했습니다. 스타일과 궁전을 왕실 거주지로 더 많이 만들었습니다. 유럽 건축가 Kayser와 Hofmann은 Chapultepec이 개조된 지 20년 후 Maximilian의 Wittelsbach 사촌 Ludwig II of Bavaria 가 지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포함하여 여러 다른 부흥 성에서 작업했습니다. 식물 학자 Wilhelm Knechtel은 건물 옥상 정원 조성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황제는 유럽에서 수많은 가구, 오브제 및 기타 고급 가정용품을 가져와 오늘날까지 전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성은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막시밀리안은 황제의 거주지를 연결하기 위해 곧은 대로 (비엔나의 링슈트라세 , 파리의 샹젤리제 등 유럽의 큰 대로를 모델로 함) 건설을 명령했습니다. 도심과 함께, 그는 아내 Carlota 황후를 기리기 위해 새로운 대로를 Paseo de la Emperatriz ("황후의 산책로")라고 명명했습니다. 1867년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대통령이 공화국을 재건하고 프랑스 침략자들을 축출하고 멕시코 보수 동맹국을 물리치기 위한 내전이 끝난 후 자유주의 개혁 이후 이 거리는 파세오 데 라 레포르마( Paseo de la Reforma)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일부 중에서>
스테인 글라스가 너무 화려하게 벽면 한쪽을 다 채우고 있습니다. 교회 같은데 작은 것만 보다가 이렇게 큰 사이즈를 보니까 너무 화려하더라고요. 아래의 그림은 2층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테라스 뷰입니다.
아래는 Paseo de Reforma라고 그림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한인식당과 한국 식품점이 많이 위치해 있습니다.
1층 분수대 모습이에요. 다행히 제가 오픈하고 바로 들어가서 사람이 많이 분비지 않을 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참 평화롭게 고요하니 좋더라고요. 이거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려고 합니다. 역사박물관이라서 세세하게 알아야 할게 많은데 굵직 굵직한건만 알고 있던 저는 오늘도 하나라도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남은 한 주도 모두들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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